불교 집안에 시집간 개신교 며느리 이야기 – (2) 돌아가신 시아버님께 절을 해야 한다? 조각글,감상과단상



1.

시아버님께서 갑자기 큰 병에 걸리셨습니다. 병환이 워낙 중하여 간병인을 구하기 어려울 때가 많아서 아가씨가 거의 도맡다시피 간병을 하고, 남편, 시어머님, 서방님, 제가 쉬는 날마다 번갈아 가서 간병을 했습니다. 좋아졌다가 다시 나빠지기를 반복하시던 시아버님은 결국 발병 후 1년 만에 돌아가시더군요.

처음 병원에 갔을 때 이대로 치료를 못 받는다면 2주 안에 돌아가실 것이고,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을 들었는데 1년씩이나 버텨주신 것이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호상은 아니었어요. 비교적 젊으셨고 너무 고생하다 돌아가셔서.......

 

2.

여기서 개신교 며느리 최고의 난제가 발생합니다. ‘돌아가신 시아버님께 절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비개신교 집안들이 개신교 며느리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가 되기도 하는 이 난제는, 개신교 신자들이 우상이나 귀신에게 절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게 됩니다. 살아계실 때는 시아버님이시므로 기꺼이 절을 할 수 있지만, 돌아가신 다음에는 절을 못 받게 되시는 거죠. (비기독교인들 중에서는 개신교인들은 무조건 절을 안 한다고 알고 계시는 분들도 계신데, 그건 아닙니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인사로 절하는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럼 전 어떻게 했느냐?

 

전 절을 했습니다.

 

3.

절을 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시댁 식구들이 제가 그래주기를 원했습니다. 절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제가 절을 먼저 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음속으로 언짢게 생각하실지 몰라도 점잖으신 분들이니 아마 별 말씀은 없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가족들이 그걸 원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냥 했습니다.


물론, 아무리 그런 이유가 있더라도 분향소에서 절을 하는 행위가 제 양심이나 신앙에 걸렸다면 전 절을 안 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별다른 가책을 느끼지 못했어요. 가책을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시아버님은 그 곳에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차려진 음식상과 시아버님 사진에 절을 한다고 해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물론, 제가 그 곳에 시아버님의 영혼이 머물고 있으며 절을 하는 행위를 통해 아버님의 극락왕생을 빌고, 후손들을 돌봐주십사 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그건 좀 다른 얘기가 되겠죠.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저의 시아버님은 이제 세상에 안 계십니다.


절을 하고 어쩌고 하는 절차들은 그저 전통적인 장례문화에 기반한 예식에 불과했던 거죠.

어차피 장례식 절차라는 것은 100%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한 겁니다.

저는 그들의 평안을 위해 절을 했고요.

 

4.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는데요. 개신교에 기복신앙이 존재하는 것처럼 한국형 불교에는 다분히 도교적이고, 민간신앙적인 요소들이 많더군요. 저는 불교가 석가모니 기타등등의 깨달음을 얻은 인간들을 본받자는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고 철학적인 종교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미신도 많고 관련된 귀신들도 많아요. 그 결과 장례를 치르는 삼 일부터 삼우제(5일 후)에 이르기까지 저는 평생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각종 기상천외한 장면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그 모든 과정들을 아무런 발언 없이 조용히 지켜보는 것은 분향소에서 절을 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은 철저하게 시아버님의 영혼이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거든요. 따라서 제 시각에서 엄밀히 따져보면 그 중 가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영가(귀신)는 꽃을 좋아하니 화환이 많이 들어와서 좋다. 영정을 들고 집안을 살펴볼 때는 고인이 쓰셨던 방에는 들어가면 안 되며, 현관에서 고인의 밥그릇을 깨야 한다. 3일 상을 치르는 동안에 상주는 목욕을 하거나 머리를 감아서는 안 된다, 입관 후에는 머리에 세 번 물칠을 해라....... 나열하면 끝이 없어요.

가장 충격적인 일은 일하시던 직장 동료들이 노제(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지내주는 제사)를 지내줄 때 일어났는데요. 그 분들은 줄줄이 나와서 시아버님의 영정 앞에 돈을 놓으면서 사업장이 번창하게 해달라, 사업장을 지켜달라고 비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시아버님이 신이 됐어요.


개신교적인 입장에서 말하자면, 저런 관점이야말로 귀신을 섬기는 거죠.

 

5.

만일 저희 부모님의 상이었다면 저는 그 상황에서 충분히 발언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며느리든 사위든 일단 혼인관계로 맺어진 상대편과 그 인척들은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가족과 남편의 가족이 우리 부부의 혼인관계에 따라 이어진 것뿐이지 두 가족이 합쳐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따라서 저는 그분들이 저런 행동을 하시는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런 행동들에서 아무런 가치를 찾지 못하는 제 자신의 관점 역시 개신교라는 신앙에 근거한 것이지요. 그 분들은 자신들의 신앙과 정성에 근거하여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요. 그것에 대해서 입을 대거나 더 나아가 비난할 수 있을까요?

저에게는 그런 권리가 없습니다.

 

6.

덧붙여, ‘아버님은 어디로 가셨을까?’ 하는 질문도 절 괴롭히더군요. 개신교 신앙에 따르면 연옥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의 사후는 천국 혹은 지옥뿐입니다. 산 자들은 불교나 천주교, 혹은 기타 종교들처럼 죽은 자들의 행방을 위해 기도할 수가 없어요. 오로지 사자의 생전 행적에 따라 사후에 갈 곳이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긴긴 장례절차와 각종 금기들을 지켜보던 저를 더 씁쓸하게 만들었습니다. 제 입장에서 그 분들이 하시는 행동은 자기위로 외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장례식이란 것 자체가 산 사람들의 위로를 위한 것이긴 하죠.


그렇다고 시아버님이 지옥에 가셨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불신지옥 예수천국이라고들 하지만, 시아버님은 정말로 선한 분이셨어요. 평생 남을 해칠만한 행동이나 언행도 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정말로 불심이 깊으셨고 독실한 신앙인이었어요. 심지어 하시던 사업이 잘못되어 빚더미에 앉으셨을 때도, ‘내가 안 갚으면 돈 빌려준 사람들의 신의를 배반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에 개인회생도 하지 않으시고 몇 년에 걸쳐서 그 빚을 탕감도 없이 다 갚으신 분이에요. 그 때 고생이 너무 심해서 일찍 돌아가신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결국, 저는 시아버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나쁜 곳에 가시지는 않았다고 믿는 셈입니다. 제가 믿는 신이 그 정도로 잔혹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요한복음 14장에 예수님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 안 간다고 해서 100% 다 지옥흑암권세에 놓인다고 하면 길이 너무 좁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기독교를 전도하기 위해 여러 번 예수님밖에 없다고 강조했지만, 그거야, 그렇게 말 안하면 전도가 안 되니까 그렇겠죠. 바울의 말에 의하면 사랑의 신이고 모든 사람들을 자식으로 삼아 사랑하시는 조물주가 예수님 외에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게 해놓으셨다는 건데....... 


저는 성경말씀이라고 다 맞는 것도 아니고, 100% 지켜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도 사람이 쓴 건데요. 만약 성경을 100% 신뢰하고 법처럼 지켜야 한다면 돼지고기도 안 먹고 비늘 없는 물고기도 안 먹고, 동성애자는 돌로 쳐 죽여야 되는 겁니까?

 

물론, 제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시는 집사, 장로, 목사님도 계시겠지만, 그 분들이 저에게 자신의 신앙적 관점을 강요할 수는 없지요. 목사님조차 교회에 봉사하는 하나의 직분을 맡으셨을 뿐이죠. 신 앞에 우리는 모두 동등한 한 사람의 인간이니까요. 개신교에는 신과 평신도를 이어주는 사제도 없고, (성경에 없는) 지침을 발표하여 그것이 곧 교리가 되게 하는 종교 지도자도 없습니다.

저는 제가 개신교인이라는 것에 만족합니다.

 

다음 편에는 절에 가야만 했던 개신교 며느리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길고 사적인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덧글

  • 아데니아 2017/08/29 13:45 #

    절 하나만 양보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군요...
    또 주변 교인이 안다면 또 곤란해지겠구...
    어렵네요 ㅠㅠ
  • kiekie 2017/10/17 18:22 #

    그럼요. 제 주변의 교인들도 제가 절한 걸 알면 굉장히 놀라고 실망할 겁니다. 참고로 부처님한텐 안했습니다. 정말 하기 싫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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